[기자수첩] 합리적 의심
이미숙 기자 | 입력 : 2025/12/07 [17:04]
그대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눈을 감아본다. ‘바쁨’이라는 무기로 권세를 내세운 자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연말이라는 장치로 이해한 마음에 오히려 서운하다.
기자 또한 지인들에게 시간 내주지 못하는 ‘시간 거지’가 되다 보니 큰 소리 낼 처지는 아니다. 모임 성향의 경중은 가렸지만 사람을 가려서 참석 여부를 결정하진 않았다.
언론, 특히 지역의 언론사는 지방정부에서 하는 일과 계획을 시민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고 요청할 만한 일이다. 그러기에 지역의 각 단체와 실무부처 수장들에게 한해의 회고와 신년 계획에 대해 문의하는 것은 기자의 소명이다. 이는 사적인 궁금증이 아닌 지역신문으로써 지역시민의 알권리를 대신한다는 자긍심에서 비롯된다.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벼슬아치들의 응대는 거물과 피라미를 가려서 처우하라는 스스로의 법령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인성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그들이 높으면 시민보다 높으랴. 기자는 시민의 입이고 펜이다. 나약할지라도 펜 끝이 무디지 않아 옥석을 가릴 정의는 있다.
세종대왕은 노비의 아들 장영실에게 눈부신 업적을 남기게 했다. 성군의 모범 지침이다. 장영실을 천하다고 생각해 재능을 키우지 못했다면 한국의 눈부신 과학 발전은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장영실은 학식도 없고 양반도, 벼슬도 아니다. 피라미에게 소중한 기회를 부여한 세종의 애민이 그래서 빛난다. 높으신 분들께 묻는다. 무엇이 중할까. 거물 언론만 응대하는 당신들 스스로의 법령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애민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은 곳에 있다.
화성오산신문은 지난 11월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니 이제 막 태어난 수준이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 내내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서 한 장 작성할 시간이 없었는지 묻고 싶다. 반갑게 반기는 융숭함은 차치하더라도 앉으라며 의자 한번 권하지 않고 입구에 세워 둔 채 몇 마디 주고받고 발길 돌릴 땐 한없이 작아진 새가슴에서 탄식이 흐른다.
‘당신이 그렇게 높아?’ 규모가 큰 레거시 미디어는 아니지만 좋은 의도로 시민에게 알려주고 싶다는데 문전박대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행인 건, 모든 단체와 실무부처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차 한잔 건네며 귀한 시간을 할애한 따뜻한 마음도 많았다. 언론사입네 하며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생 미디어도 문제인 건 맞다. 그런 점은 언론인들도 숙고가 필요함을 인정한다. 그렇다 치자. 설령 그게 개인 블로거가 당신네 기관에서 하는 일을 알리고 싶다는데, 단 1분이라도 정성껏 챙기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게 애민이다. 기자도 오산 시민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들이 더 기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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