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얌전한 이 새벽, 안개가 포근하게 앉아 있다. 달빛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아침을 맞이하려는 우주는 어둠을 걷어내느라 서두른다. 어디 아침뿐인가? 모든 게 바쁘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 뭐가 급한가 싶다가도 내심 그 속도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상당히 아름답구나! 자연, 그 흐름. 사람의 기준으로 흘러가지 않는 자연이기에 거스를 수 없음을 알지만 거대한 흐름이 등을 훑어 내릴 때 벅찬 감정은 정복이라는 패를 던진다. 큰 우주에 작은 별이 된 기분, 아니 저 건너편 작은 가로등이 맞겠다.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지만 욕심이라는 사회적 굴레에 약해지고 결국은 나만의 그림에 이야기를 씌운다. 그래, 썩 나쁘지 않다. 그림은 나의 집이다. 과거라는 집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밤이 되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머물 곳이 많다. 한밤 한밤 그곳들을 찾아가다보니 앞으로 지을 집들에 허술해 질까 걱정한다. 이제 후회라는 집보다 추억이라는 집을 더 짓고 싶다. 짧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면 후회도 추억이 될 것 같다. 이제 아름답고 싶다.
박상민(1993~ ) 작가는 올해 딱 30살이 된 젊은 화가이다. 20대 중반부터 구강암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아오며 오직 그림 그릴 때 말고는 제 정신이 아니라는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개인전과 공동전에 참여 요청을 받아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평창 월정사 입구에서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젊음을 병고로 치러내는 삶과 독백이 담겼다. 본지는 박상민 작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직접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이 남자의 그림 읽기’를 이번 호부터 게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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